관련단체 및 소식 제작진
주최 /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행사당시 회장 박춘화, 현임 회장 김련)
미국대표단단체 / 미국조선족연합회 (회장 박영애), 뉴욕조선족동포회 (회장 정성국)
글 / 리화옥 미국 특파원
편집 / 배상봉
편집자의 메모
일본조선족미디어가 태어난 이래 이렇게 긴 문장과 많은 사진들을 넣어 발표해본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조선족대표단의 일원으로 이번 일본의 세계조선족장끼자랑대회에 참가한 1인칭의 시선으로 적은 생동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아세아에 있는 중국, 한국, 일본의 조선족들과 태평양 건너 미주대륙에 있는 미국의 조선족들이 넓은 바다를 뛰어넘고, 밤과 낮의 반대편에서 열몇시간의 시차를 넘어 건너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을 기록한 소중한 역사기록이기도 합니다.
미국 특파원기자 리화옥 선생님의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미국 조선족 대표단의 시선으로 다시한번 그 장면들을 체험해 보세요.
- 1. 이야기를 시작하며
- 2. 십여 년 만에 다시 이어진 인연, 촉박했던 참가 신청
- 3. 도착 및 환영만찬
- 4. 섹션 1. 하나의 문화로, 함께 하는 세상
- 4.1. 공동체를 세운 사람들:
- 4.2. 뉴욕조선족 동포회
- 4.3. 펜실베니아주 중국조선족동포협회
- 4.4. 미 동남부 중국조선족동포협회
- 4.5. 봉사와 연대의 다른 축, 그리고 지역단체들:
- 4.6. 예술·학문·언론으로 남긴 이름들
- 5. 섹션 2. 하나되는 우리, 빛나는 축제무대
- 6. 섹션 3. 화합과 도전, 함께 그리는 래일
- 7. 섹션 4. 문화탐방 및 환송만찬회
- 8. 행사 너머로 이어진 자리
- 9. 글을 맺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며
도쿄의 하늘 아래 중국, 한국, 미국, 일본 – 전 세계 4개국에 흩어져 살던 조선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례없던 화합의 장을 만들어 냈다.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박춘화 회장)에서 주관한 에이세이 컵 ‘2026 세계조선족 장끼자랑대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그날의 감동은 여전히 뜨거운 울림으로 남아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이 여정에 동참했던 미국 조선족 대표단의 생생한 현장을 기록한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이어진 인연, 촉박했던 참가 신청
많은 사람들이 물어 왔다.
“그 먼 미국에서 어떻게 일본의 조선족행사에 참가하게 되였나요?”
이야기는 지난해 9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동북아신문을 통하여 우연히 김광림 교수님이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제4기 회장에 당선되였다는 뉴스를 접했다.
김광림 교수님, 그 이름은 유난히 낯설지 않았다. 2024년 6월, 미 동부 필라델피아에 있는 연변한의원 박영애 원장님의 두 번째 취재기사를 쓰면서 깊이 인상에 남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즉시 보내드린 김교수님의 기사를 읽은 박영애 원장님은 “너무 반가운 소식”이라 며 곧바로 그에게 축하 메세지를 전해 드렸다고 한다.
그렇게, 끊어졌던 인연 하나가 십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4월, 박영애 원장님은 연변대학 기금회 이사회 초청으로 도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공항에서 그를 반갑게 맞이한 사람이 바로 일본 조선족 사회를 위해 오랫 동안 헌신해 온 김광림 교수님이었다. 그보다 앞서, 김 교수님이 미국 하버드 대학교 방문학자로 머물던 시절에는 몇 차례 통화를 나눈 인연도 있었다.
당시 도쿄 방문에서 박 원장님은 김 교수님의 강연을 직접 듣고, 교수님이 고문으로 활동 중이던 ‘3 NEW’((New Frontier, New Wisdom, New Network), (새로운 지평,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네트워크) 재일 조선족 청년 멤버들과 좌담회를 가지며 교류의 폭을 넓혀갔다. 이후에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두 사람의 안부 인사는 간간이 이어졌다.

이러한 인연 위에 전해진 축하 메시지를 받은 김광림 교수님은 12월 말에 예정된 자신의 회장 이·취임식보다는 새해 1월에 열릴 ‘세계조선족 장끼자랑대회’에 더 주목 했다. 그는 박 원장님께 '미국 조선족 사회'를 주제로 ‘도쿄포럼’에서의 강연을 정중히 요청했다.
곧바로 10월 중순, 박 원장님은 이번 행사의 주최 측인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 협회 박춘화 회장님으로부터 ‘제1회 세계조선족장끼자랑대회’ 정식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박 원장님은 유럽 여행중에 있었다. 6월 1일부터 접수가 시작됐던 이번 대회의 응모와 해외 참가자 신청 마감일은, 초대장에 10월 31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다. 시간은 촉박했고 박 원장님은 초조한 마음에 그 초대장을 내게 찍어 보내주며 “알아서 해 달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과제를 맡겼다.
그날은 정확히 10월 17일이었다.
결단을 내리기까지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내린 나의 결정은 미국 조선족 대표단 구성이었다. 박춘화 회장님께 의향을 전달하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열정적인 대환영의 뜻을 보여줬다.

급기야 나는 미국 내 조선족 협회들을 대상으로 숨 가쁜 홍보를 막판까지 하며 간곡한 협조를 부탁했다. 그야말로 번개불에 콩 볶듯 촉박한 일정가운데서, 2인무와 가야금 독주(아쉽게도 개인 사정상 결승에는 불참) 두 종목이 장끼자랑 대회에 응모하게 되었다. 또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클라리넷 연주가 백철 선생님을 이번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추천해 드렸으며, 위촉장을 수여받은 그에 대한 인터뷰 기사도 함께 발표하였다.
도쿄포럼에서 강연하게 될 박 원장님을 응원하고, 세계적인 조선족 행사에서 식견을 넓히며 경험을 나누는 동시에 향후 행사를 함께 모색하고자 조선족협회 회장단들도 미국 대표단에 합류하였다.
특히 뉴욕조선족동포회 정성국 회장과 필라델피아 연변중의원 박영애 원장이 흔쾌히 협찬금을 후원함에 따라, 이번 세계조선족행사의 공동 주최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나와 박춘화 회장님은 시차를 잊은 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회의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출연진의 결승 진출이 확정된 후 시작된 네티즌 투표 기간에는, 조선족 동포회에 미국 대표팀의 2인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도착 및 환영만찬
미국 대표단이라고 하지만 각자 출발지가 달라서 함께 일본 공항에 들어 설 수 없었다.
1월 22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출발해 태평양 위를 12시간 동안 가로지르는 긴 비행이었지만, 피로는 이내 사라지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1월 23일 늦은 오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자 “도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리일남 사장님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출발한 미국조선족연합회(동부·동남부 지역) 박영애 회장님은 나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드디어 23일 저녁, ‘오늘의 만남, 하나의 미래로’ 환영만찬이 시작되었다. 일본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박춘화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진들을 주체로, 김광림 회장님을 비롯한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분들이 환한 미소로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드디어, 서로 다른 국적을 가졌지만 같은 뿌리를 둔 출연진들과 대표단들이 단란히 한 자리에 모였다. 삶의 터전은 각양각색이였지만 식탁 위에 오고가는 인사와 웃음 속에는 ‘해외에서 친척을 만난 듯” 친근감이 스며 있었다.

박영애 회장님은 드디어 14년 만에, 전일본중국조선족총연합회 김광림 회장님과 뜻 깊게 재회하였다. 이밖에 그는 2012년 일본 방문시, 연변대학재일학우회 회장이였고 지금은 재일본조선족장기협회 회장인 호림 씨와도 기쁘게 재회하였다.
박봉화 씨의 사회하에 박춘화 회장님의 열렬한 환영사가 있었고 참가자들이 격식없이 자기소개를 하는 순서가 있었다.
식탁에는 풍성한 일본음식들이 계속 상에 올랐지만 참가들은 서로 명함장을 교류하고 위쳇에 친구를 추가하며 웃고 얘기를 나누느라 음식들이 식어가는 줄 몰랐고 환영만찬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정성국 회장과 장춘광 이사장은 재일조선족축구협회 리호 회장 및 이번 장끼자랑대회의 변소화 총감독과는 전부터 호형호제하는 사이여서 이번 만남이 더욱 반가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미국 사람들은 “세상 참 좁네요. (A Small World)”라고 말한다. 넓고도 좁은 이 세상은 때때로 우리에게 마법 같은 만남의 기적을 선사한다.

백철 음악가님은 고향의 클라리넷 연주자 후배인 전만석씨와 무려 37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했다. 끊겼던 세월의 무색함 만큼이나 서로를 반가워하는 두 분의 모습은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물들였다.
환영만찬 장소에 들어서자 누군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와 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선생님, 연길시 제2고급중학교에서 조선어문을 가르치셨죠? 저도 그 학교 졸업생 이에요!”
알고 보니 그는 나의 제자들보다 한 해 먼저 졸업한 심해란 씨였다. 그는 “일본에는 시 2중 졸업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라며 반갑게 알려주었다.

교단을 떠난 지도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도쿄 한복판에서 다시 들려온 제자의 “선생님”이라는 설레이는 그 부름은 이번 일본 방문에서 귀한 선물로 남아 있다.
그날, 일본에서의 첫 만남은 단순한 환영의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건너와 마주 앉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리고 흩어져 있던 조선족 공동체가 다시 하나의 원으로 이어지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섹션 1. 하나의 문화로, 함께 하는 세상

1월 24일 오전, 이번 행사의 첫 섹션으로 마련된 ‘도쿄포럼’이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박봉화 씨의 사회로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리동철 중국 산동직업기술대학 교수(동아시아 일본학 연구학회 회장)가 “언어공동체와 다언어 교유”이란 제목으로 조선족 사회의 언어환경과 교육과제에 대해 깊이 있고 전문가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이어서 미국조선족연합회(미 동부와 동남부지역) 박영애 회장이 “미국 속 조선족 이민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발제하였다. 그는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미국 내 여러 조선족 협회들의 역사적인 사진들을 소개하며, 당시의 상황과 시대적 흐름을 설명했다.
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미국내 조선족의 이민은, ‘유학파 이민’과 ‘생활형 이민’으로 나뉘며 태동기, 성장-확산기, 정착-안정기를 거쳐 현재 미국 전역에 약 7만-10만명의 조선족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속 조선족 40년의 이민사는 단순한 이주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공동체 를 만들고, 공동체가 다시 사람을 키워낸 역사다.
공동체를 세운 사람들:
뉴욕조선족 동포회
2000년 1월 26일, 뉴욕 금강산 식당에서 열린 뉴욕조선족동포회(현 KCANY) 창립대회는 미주 조선족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초대 회장으로는 최동춘 씨가 선출되었으며, 이후 리현철, 원종윤, 리수일, 장춘광, 다시 리현철, 그리고 현재 제8대 회장인 정성국 회장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맥을 이어왔다.
정성국 회장은 1982년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생으로, 연변 제1중학교와 하얼빈 소재 대학을 졸업했다. 삼성전자 북경 법인 근무를 거쳐 2012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LED 조명 및 건축자재 사업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신뢰를 쌓아왔다.

2024년 3월 17일, 약 10여 년 만에 공정한 민주적인 투표방식으로 치러진 회장 선거에서 선출되며 동포회 정상화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펜실베니아주 중국조선족동포협회
2006년에 펜실베니아주 중국조선족동포협회가 창립되였고 박영애 씨가 초대 회장으 로 추대되여 2대, 3대에 걸쳐 협회를 이끌어 왔다.박영애 회장은 1989년 미국 이주 이후 의료·장학·동포회관 제공 등으로 지역사회의 뿌리를 다진 인물이다.

미 동남부 중국조선족동포협회
2016년 2월 7일, 미 동남부 중국조선족동포협회가 창립되었고 양희찬 씨가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양회장은 “一人为大家, 大家为一人”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해마다 정기총회, 봄 야유회, 가을 야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였다.
2020년 2월, 정기총회 및 이취임식에서 김철만 씨가 미 동남부 중국조선족동포협회 제3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김철만회장은 초창기부터 4년간 협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2024년 2월, 정기총회 및 회장 이취임식에서 김동식 씨가 제5대 회장으로 추대 되었다. 김동식 회장은 협회 초창기부터 4년간 행사위원장, 2020년부터는 4년간 협회 부회장직을 맡았었다.

봉사와 연대의 다른 축, 그리고 지역단체들:
뉴욕조선족봉사센터는 2024년에 초대 회장에 주광일 씨를 선출하고 무료 의료 봉사, 김치나눔, 위기에 처한 동포 긴급지원 등을 통해 공동체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한중미사랑협회는 2021년에 설립되여 김성월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법률·복지·청소년 시민교육을 통해 차세대 양성에 힘쓰고 있다.
뉴욕 조선족경제연합회는 2025년 6월에 창립식을 열고 미나 리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네트워크 강화, 정보 교류,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뉴욕에는 축구협회, 배구협회, 골프협회, 사격협회 등 여러 단체들이 있으며 다양한 활동들을 활발히 펼쳐 나가고 있다.
예술·학문·언론으로 남긴 이름들
클라리넷 연주가 백철, 안과 전문의 노문남 박사와 화학자 조홍화 박사, 기자 이화옥, 한의사 이성열 등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선족의 이름을 미국 사회에 새기고 있다.
40년 전, 보다 나은 배움의 길과 보다 나은 삶의 길을 찾아 떠났던 발걸음은 이제 미국 사회 속에 단단한 뿌리로 남아 다음 세대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박 회장의 이번 강연은 미국 내 조선족 이민사의 흐름과 공동체 형성 과정을 전면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조명해 주었는바 이는 미주 조선족 이민사의 소중한 역사적 자료로 남을 것이다.
김광림 재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회장(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기금회 이사장, 니가타 산업대학교 교수)은 “일본에서의 조선족 단체활동”을 주제로 일본 조선족 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대해 폭 넓게 소개하였다.
일본조선족문화경제교류협회 장호 명예회장은 본 협회의 설립과 발전 과정, 그리고 협회 내부 조직 구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져, 참석자들의 궁금증과 질문에 대해 답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필자는 연합회 소속 32개 단체를 비롯해 미등록단체까지 포함하면 일본 내 크고 작은 조선족 단체가 70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울러 '조선족 동네' 가 존재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어, 강연 후 잠깐 질의응답을 통해 얘기를 들어보기도 하였다.

이번 포럼은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족 예술인과 문화인, 학술인, 경제인 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선족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상호 이해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더 나은 조선족 공동체의 미래를 모색하려는 취지하에 마련된것으로 각별한 의의가 있다.
섹션 2. 하나되는 우리, 빛나는 축제무대

1월 24일 오후, 이번 행사의 하아라이트인 ‘하나되는 우리, 빛나는 축제 무대’가 성황 리에 막을 올렸다. 일본, 중국, 한국, 미국에서 모여온 출연진들이 ‘세계조선족장끼 자랑대회’를 통해 선보인 열정적인 무대는 객석의 환호와 맞물려 축제 현장을 뜨거운 감동으로 물들였다.

국경과 세대의 벽을 허물고 아마추어와 전문가가 함께, 다양한 장르로 일궈낸 오늘의 무대는 우리 문화의 화합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 축제의 화려한 순간들은 이미 기사와 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음에 남았던 여운과 함께, 미국 조선족 출연진의 무대가 남긴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이날 다채로운 공연의 감동은 시상식으로 이어졌다.

미국 이인무 ‘박편무’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던 김려화, 남영란 씨는 ‘창의상’ 을 수상 하였으며 이에 일본 연변상회 박동일 사장이 시상을 하였다.

박영애 회장님은 감동상을 받은 박세광 씨에게 시상을 하였으며, 정성국 회장님은 노력상 수상자인 장금화, 장금희 씨에게 상을 전달하였다.
김려화 씨는 뉴욕조선족동포회 정성국 회장님의 부인으로, 이번에 여섯 살 난 막내 아들까지 세 가족이 동행해 그 의미를 더했다.
1980년 연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무용재능을 보였다. ‘북경 전국 기계체조 대회’에서 개인 2등상, 단체 1등상 수상을 시작으로, 1989년에는 중앙소학교 문화부중의 일원이 되어 북경 내 여러 군부 위문 공연을 거쳐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총경 연출 무대에도 올랐었다.

비록 전업 무용가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그는 삶의 굽이마다 춤을 놓지 않았다. 미국에 오기 전 북경 삼성그룹 재직 시절에도 ‘삼성 직장인 달인쇼’에서 무용 부문 2위를 차지하며 조선족 무용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보였다.
낯선 미국 땅에서도 우리 춤에 대한 꿈과 애착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1년 전부터 무용반에 다시 몸을 담은 그는 이인무와 독무로 뉴욕 조선족 행사 무대에 올랐고, 오늘 마침내 이번 세계조선족 장끼자랑 무대에 서게 되었다.
이인무의 또 다른 주역인 남영란 씨는 뉴욕조선족동포회 부회장이자, 두 살, 네 살, 아홉 살 세 자녀를 둔 다둥이 엄마다. 어린 아이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하는 일본행을 두고 고민도 깊었지만,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따뜻한 배려 덕분에 보모까지 구해놓고 이번 무대를 결심할 수 있었다. 그가 보여준 무대에 대한 열정은 실로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 춤과 노래 속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을 키워왔다. 이번에 미국 조선족을 대표해 큰 무대에 설 수 있어 영광이었 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이번의 소중한 경험을 깊이 새기고, 앞으로도 조선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비록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따뜻하게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용기와 감동을 안고 무대를 잘 마칠 수 있었다”며 “남편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무대였다”고 하면서 묵묵히 곁을 지켜준 남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장끼자랑대회에 초대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로스앤젤레스에서 오신 백철 클라리넷 연주자가 선사한 게스트 무대는 많은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연주한 첫 곡, ‘목동무곡’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와 향수를 경쾌한 클라리넷 선율에 담아냈다. 목가적인 평온함과 밝은 음색은 마치 푸른 초원 위 목동의 유쾌한 일상을 눈앞에 그려내듯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어진 ‘이머 클라이너(Immer Kleiner)’는 ‘점점 작게’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연주 도중 악기의 마디를 하나씩 분해해 나가며 연주를 이어가는 고난도의 재치 넘치는 무대였다. 나팔부리부터 튜브까지, 악기가 짧아질수록 제어하기 힘들어지는 음정과 음색의 변화는 연주자에게 극한의 기교를 요구하는 도전이었으나, 백철 연주가는 완벽하게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백철 연주가의 예술적 깊이가 고스란히 묻어난 이번 무대는 오직 그만이 구현할 수 있는 독보적인 감동의 장이 되었다.

이번 무대에 새롭게 도입되었다는 첨단 AI 기술과 LED 무대 배경은 시시각각 황홀한 영상을 연출하며 축제의 품격을 한층 높였다. 무대위를 찬란하게 비춘 조명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분서주하며 모든 순간을 뒷받침한 스탭들의 헌신적인 땀방울은 이번 대회를 더욱 빛나게 만든 숨은 주역들이었다.

이러한 정성과 무대 위 출연진들의 열정, 그리고 객석을 가득 채운 뜨거운 환호가 하나로 어우러진 이번 현장은, 비록 몸은 흩어져 살지라도 우리 민족의 정서가 여전히 깊은 곳에서 하나의 뿌리로 맞닿아 있음을 다시금 증명해 보였다.
섹션 3. 화합과 도전, 함께 그리는 래일

1월 24일 저녁,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의 회장 이·취임식과 '문화의 밤' 행사는 낮동안의 장끼자랑대회가 남긴 열기를 한껏 끌어올린 축제의 장이 되었다.

이날 행사 역시, 기사와 영상으로 널리 전해졌기에, 나는 우리 미국 대표단이 남긴 발자취와 감동의 순간들을 조용히 되짚어 보려 한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박춘화 회장님은 해외 각지에서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무대를 빛내준 출연진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함께 지원금을 전달해 주었다. 그 손길에는 동참에 대하 깊은 감사가 담겨 있어 받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곧이어 나에게도 뜻밖의 감동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런 순서가 있는지도 미처 몰랐던 나는, 변소화 무대 총감독님과 김련 신임 회장님과 나란히 ‘특별공로상’이라는 과분한 상을 받게 되었다.
내가 한 일에 비해 지나치게 큰 영광이라는 생각에 기쁨보다 송구스러움이 앞섰다. 한편, 이 상은 개인에게 주어진 공로라기보다 함께 땀 흘린 모두의 열정에 보내는 주최 측의 깊은 배려일 것이라 여겨졌다. 순간,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박춘화 회장님의 이임식과 김련 회장님의 정중한 취임식 의식이 끝나고 박영애 회장님의 진심어린 축사가 있었다.
그는 먼저 “이 뜻깊은 자리에 미국 대표들을 초대해주신 박춘화 회장님께 감사드린 다”며, 지난 시기 협회를 위해 쏟아부은 그의 헌신과 노고에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동시에 새롭게 닻을 올리는 김련 신임 회장님의 취임을 축하하며, 협회가 앞으로 맞이할 더 큰 도약과 번영을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이어서 그는 “2012년에는 처음으로 홀로 일본을 방문했지만 오늘은 사랑하는 미국 조선족 대표단과 함께 이 자리에 설수 있어서 더욱 기쁘고 설레인다”고 감개무량하게 고백해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작년 12월에 취임식을 올린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김광림 회장도 축사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박영애 회장님께 후원자 제1호 감사장을 전달하였는 바 이는 국경을 넘어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해 오면서 연대를 만들어낸 소중한 증표였다.
취임식의 열기는 ‘문화의 밤’으로 이어져갔다.

일본 각 단체들의 건배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 미국 조선족 대표단도 단상위에 올랐다. 정성국 회장이 “세계 조선족 공동체의 화합과 도전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의 문화로 함께 하는 세상을 ”라고 힘차게 선창하였다. 그 기세에 맞춰 우리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위하여!”를 세번 외치며 건배의 잔을 높이 추켜들었다.

뉴욕조선족동포회 장춘광 이사장은 넘치는 끼와 풍부한 감성으로 노래를 선사했고 김려화, 남영란 두 무용수의 흥겨운 춤사위는 한결 행사장의 흥을 돋구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구련옥 가수의 앵콜곡 “타향의 봄”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공명을 불러 일으켰고 어느새 전원 합창으로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어느덧 행사의 끝자락, 권호군 명예회장의 페회사와 함께 경쾌한 “노래를 부릅시다” 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에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발걸음을 맞춰 나갔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이어진 그 둥근 원 속에서, 이번 여정의 대단원은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섹션 4. 문화탐방 및 환송만찬회

1월 25일, 이번 행사의 마지막 일정으로 후지산 문화관광 탐방과 환송만찬이 마련되어 있었다.출연진들은 각자 자유 일정에 따랐고, 우리 ‘정예부대’ 열 명만이 후지산 관광버스에 올랐다.

가이드를 맡은 김권철 부회장은 마이크를 잡고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70~80년대 연변 동요를 술술 풀어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 곡, 두 곡 이어질수록 버스 안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이내 너나없이 따라 부르며 박수로 장단을 맞춰 갔다. 유쾌한 농담과 정겨운 노랫소리, 웃음꽃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고,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마저 리듬을 타는 듯했다.
어린 시절 부르던 짤막한 동요 한 자락에 마음 문이 금세 열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 문화가 지닌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후지산은 오전 내내 산 중턱까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도쿄 시내 어디에서든 각도만 맞추면 후지산이 보인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저 신기한 말로만 들렸다. 일행 가운데는 고층 호텔 방에 묵으며 날마다 후지산을 훤히 본다는 분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마침내 정면으로 바라보는 후지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야호!” 탄성이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산꼭대기를 살짝 감싸고 있던 마지막 실구름마저 유유히 사라졌다. 머리에 빙설을 떠인 후지산은 유난히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뭉게뭉게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그 웅장한 진면목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마저 우리를 반기는 듯 맑게 개인 도쿄의 날씨 속에서, 우리 ‘후지산 팀’은 마치 행운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했던가. 이날은 특별히 변소화 전문 촬영가님이 동행하여 추위 속에서도 단체사진과 개인사진을 하나하나 정성껏 담아 주었다. 같은 배경이라도 프로의 촬영솜씨는 역시 남달랐다. 그 수고 덕분에 우리는 이 하루를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으로 사진 한 장 한 장 속에 고스란히 남길 수 있었다.
오늘의 후지산 관광이 유난히 즐거웠던 것은 박영애 회장님을 비롯해 예술가들, 그리고 중학교 선생님 등 좋은 분들과 일행을 이뤘기 때문이었다
80년대,「오빠의 편지」로 연변가요계를 주름잡으며 큰 사랑을 받았던 구련옥 가수를 스스럼없이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한 사람의 팬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운 경험이었다.
할빈에서 온 국가 1급 가수 강경옥 씨, 한국에서 온 색소폰 연주가 김성운 씨, 청도에서 온 박세광 가수, 그리고 북경에서 온 중국인민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다재다능한 무용수 김연서와 그와 동행한 어머니까지. 특히 훈춘시 제5중학교에서 조선어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이야기에 처음 만났음에도 왠지 모를 친근감이 더해졌다.
후지산 인근에서 여러 차례 정차하며 들른 풍경구를 둘러보는 시간도 즐거웠다. 길가에 올망졸망 늘어선 음식점들에서 가이드가 사 주신 따끈한 구운 고구마와 삶은 옥수수, 그리고 ‘야키단고’는 또 다른 별미였다. 사과를 한 알씩, 그것도 먹기 좋게 잘라 팔던 풍경마저 정겹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박세광 가수의 기타 반주에 맞춰 부드럽고 감성적인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덧 모두가 잠시 꿈나라로 들어갔다.
환송만찬회 장소에 들어서자, 전날 무대에 올랐던 장끼자랑 공연 장면들이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화려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2박 3일 동안, 주최 측 관계자 및 기타 여러분들과 출연진과 함께해온 우리 미국대표 단들은 모두가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정다운 담소를 나눴다. 이어지는 건배 속에서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박세광 가수가 공항으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부른「잘 있어요!」노래에 맞춰 참석자 모두가 함께 춤을 추며 이별의 환송만찬회는 서서히 막을 내렸다.
행사 너머로 이어진 자리
우리 대표단이 일본에 도착하기 몇 주 전부터 김광림 회장님은 행사가 끝난 뒤 전일본 중국조선족연합회를 대표해, 개인의 성의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며 박영애 회장님께 연락을 해왔다.

1월 26일 점심, 김광림 교수님이 초대한 몇몇 분들과 우리 대표단은 일본의 木兽路 전통 레스토랑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자리에서 박영애 회장님은 또 14년 전 일본 방문시 인연을 맺었던 다른 주인공, ‘3 NEW’ 대표 문걸 씨와 반갑게 재회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운데서 우리는 ‘세계 조선족 장끼자랑 대회’의 원만한 성공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덕담을 나누는 한편, 앞으로 조선족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격의없이 생각을 나누었다.
14년 전, ‘3 NEW’라는 이름으로 도쿄에서 조선족의 미래를 두고 함께 고민했던 분들과 함께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런듯 너무 인상 깊었다.
다가오는 6월,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구심점인 축구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 세계 조선족 축구대회’를 일본에서 개최하는 구상도 함께 나누며,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그려 보았다.
특별히, 이날 자리에서 일본조선족미디어 동네 운영자이며 대표이신 배상봉씨가 “2026 인공지능 시대 일본 지역 조선족 미디어 발전에 관한 보고와 전략”을 직접 작성해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지역 조선족 미디어가 나아가야 할 발전 전략과 선택 가능한 플랫폼, 일본 조선족 미디어 및 단체 미디어의 현황, 그리고 일본 내 조선족 활동을 다루는 공개 미디어까지 다섯 개 분야를 중심으로 현 상황을 상세히 분석하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에서 민간 조선족 미디어가 형성·발전해 온 과정을 제시하며, 미주 조선족 사회를 위한 인공지능 검색 대응 사이트 구축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하였다.
이는 그동안 미국 조선족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부분이자, 인공지능 시대에 시급히 보완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에피소드로, 배상봉 대표가 ‘세계조선족장끼자랑’노래로 1월 26일 작사,작곡하고 AI가 부른 “미국에서도 친척 왔네” 신곡은 미국 조선족 사회의 심금을 울리며 뜨거운 공감과 감동을 선사하였다.
인공지능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 사회에서 미디어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더욱 시급해지고 있으며, 그 중요성 또한 날로 커지고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고급스럽고 정갈한 일본 전통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서, 김련 신임 회장이 올리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건배사가 분위기를 열었다. 이어진 각자의 건배사는 표현은 달랐지만, 모두의 희망과 소망을 담아 결국 “위하여!”로 하나가 되었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만남의 기쁨과 연대의 마음이 잔잔히 퍼져나갔다.
행사너머로 이어진 자리는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날 나눈 생각과 약속들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의 자리로 이어질 것이다.

글을 맺으며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미주 조선족 이민 40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정착을 넘어, 공동체의 뿌리를 단단히 내려왔다. 십여 년 전부터 일본과 이어온 교류의 끈이 마침내 이번 도쿄에서 ‘문화로 하나 되는’ 놀라운 결실을 이루어 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곳에 심은 연대의 씨앗이 또 다른 축제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번 만남은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 한·중·미·일 조선족 사회의 저력을 사상 최초로 일본이라는 한 무대에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 역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은 이정 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세계 조선족 사회를 위해 이토록 성대한 문화 축제의 장을 마련해 주신 일본조선족 경제문화교류협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미국 조선족 대표단을 ‘해외에서 만난 친척’처럼 따뜻하게 맞아준 일본의 모든 형제자매들, 그리고 이 여정을 함께 만들어온 한 분 한 분께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도쿄에서 나누었던 이 뜨거운 유대의 기억이 우리 모두의 내일을 밝히는 환한 빛이 되길 기원한다.
글 / 리화옥 미국 특파기자
사진 / 변소화, 박영애, 심해란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