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정보
글 / 健達
동네 편집자의 말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김철수 사무국장의 추천으로 본 문장을 동네에도 게시하였습니다.
본문 작성자 게이오대학 오무송교수는 지난 3월 천지회 30주년기념 심포지엄에 참가후 조선족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지속적인 사색을 하게 되었으며 본 문장을 작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딸, 아들이 뜻도 모르면서 아리랑의 선율만 나오면 이 구절만은 따라 부른다. 술 즐기는 필자가 거나할 때 가끔씩 부르기도 했다 만, 산후조리에 육아를 도우려 일본에 오셨을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불렀고, 자연스럽게 손군들에게 읽혀 주셨다고 짐작이 된다.
조선반도에 문화 뿌리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 <아리랑>은 심령의 노래이며, 더 좋은 삶을 찾아 이동하는 우리에게는 이별의 아픔과 향수를 공명 시키는 선율이다. 서울에서도, 평양에서도 그리고 연길에서도 여러가지 문맥과 형식의 <아리랑 축제>가 개최 되여 왔다.
2025 년 3 월 22 일, 재일본 중국 조선족 사회(이하, 재일 조선족 사회로 생략함)의 선구적인 조직으로 알려진 천지회 (전신--천지클럽이 1995 년 3 월 25 일 설립, 2002 년 천지협회로 개명, 2017 년 10 월 천지회로 일본사단법인 등록) 설립 30 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일본 도꾜에서 열렸다. 주최측의 배려로 필자는 하나의 세션의 파실리테이터 (facilitator)를 맡게 되였다.
기획자가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포스트인상주의파 화가 겸 조각가)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모티프를 차용하여 심포지엄의 기조를 정했기에, 필자는 그 미래지향에 초점을 둬 "아리랑 고개를 넘어 우리는 어디로?" 로 설문을 바꾸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의 뿌리를 찾아 보면, 그 선조들이 19 세기 후반부터 조선반도를 떠나, 고향의 크고 작은 고개만이 아닌,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과 밭을 만들어 삶의 터를 가꾸다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이라는 신분으로 살았다. 이들의 후예가 바다를 넘어 섬나라 일본에서 정착을 시도하며 30 여년의 역사를 쓰려 한다. 길지는 않지만 짧은 역사도 아니다. 조선족 역사에 처음 수 만명 단위의 유학이란 명의로 고향을 떠난 우리의 일본 생존/생활의 경험과 교훈을 정리하고, 향후의 과제를 사색하는 시각인지라 역사적 사명감을 안고 진행을 맡았다.
문제 제기자의 배경과 시점
진행자의 문제의식과 시점에 따라 전체 토론의 방향이 크게 변할 수 있기에, 필자의 성장환경과 학술배경을 연결시켜 소개하면서 본 토론의 특수성 혹은 제한성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근대주의자라고 자아인식하는 필자는, 직업적인 정체성을 조선족 출신의 정치학자에 두고 있다. 개인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국적은 재 선택할수 있다. 하지만 민족은 숙명이다. 중국 조선족 3 세로 태어나 자란 환경과 체득은 필자가 정치학자로 성장하는 선천적인 조건이 였다. 아래의 몇가지 면에서 돌이켜 볼 수 있다.
ㄱ 지리적 공간
필자는 조선반도와 중국 대륙이 이어지는 간도에서 태여 나 자라면서, 민족과 국가, 조국과 모국, 한국과 조선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사고해 왔다. 현재 삶의 터전이 일본이 되다 보니 아이들의 고민에는 일본이라는 요소가 더 가중이 됐다. 이러한 공간적 이동과 능동적인 정착으로 인해, 필자의 일상에는 조선 반도, 중국, 일본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잡거하며 조화되고 있다.
ㄴ 시간적 차이
전근대적인 농업사회와 근대의 공업사회, 나아가 포스트 근대사회의 양상을 동시에 보고 느끼면서, 비교하면서, 판단하면서 살아왔다.
ㄷ 소수자의 숙명
장소를 불문하고 태어나서부터 필자는 소수자이다. 주류사회와의 경쟁은 생존의 전제였고, 운명의 과제였으며, 공존속에서 삶의 전략성을 강화 하려고 노력해왔다.
ㄹ 받아온 교육
소학교 시절엔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최종목적으로 하는 가치관 교육에, 중고등 학교에서는 맑스-레닌주의 철학-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방법론을 배웠다, 대학에서는 정치 교사를 육성하는 사상정치교육(학과 이름)을 전공했다. 일본에 유학 와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은 학문 -- 정치학을 신선한 느낌으로 기초부터 공부했고, 연구자로서는 권력과 권리의 관계와 시민의 주체성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어 왔다.
ㅁ 보아온 정치환경
비록 선거권은 없지만, 정치학자라는 시점에서 일본의 민주주의 정치 실천도 관찰해 왔다. 숙명적인 관심사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한 분석도 시도해 봤다. 2020-22 년 미국에서 방문 연구생활을 하면서 미국의 일부분 종교활동, 대통령 선거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중국에서 배우고 느껴온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 일본에서 직감한 자본주의 효율과 그에 따르는 격차, 개인의 책임과 동일시되는 자유의 개념과 실체, 민족, 인종, 종교적으로 다원 한 미국사회의 민주주의의 실천, 이 모두를 받쳐주는 법의 질서도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생리적으로, 원칙적으로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배제하고 비판하는 입장엔 설수 없었고, 각자의 내부 논리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며, 독립적인 판단 기준도 다듬어 가고 있다. 2024년 12월3일 한국의 계엄령선포와 그 후의 행방도 역사 지식의 아닌 뉴스로, 현장의 감각으로 느꼈다.
ㅂ 물려받은 유산
일본의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독립 운동, 중국에 대한 침략과 항일전쟁 등으로 엮어진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집단적인 기억과 감정과 함께 물려 받았다. 전쟁의 피해자, 피식민지 민족의 기억과 감정을 당사자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체득하면서, 제국의 논리와 가해자의 반성에, 세대를 넘어 짊어지는 윤리적 책임도 보여 왔다.
ㅅ 이어온 갈등
『아리랑 (Song of Arirang)』(님 웨일즈 (Nym Wales) 저,1941 년) 에 닮은 중국 혁명에 참여한 조선 혁명가의 고뇌와 분투에, 1945 년후 동북지방에서의 조선인들의 방황과 선택의 결과, 조선/한국 전쟁에서의 조선인 내부 분열등을 역사 지식으로 읽었고, 단편적인 정보를 근현대사 공부를 하면서 체계화 하며 보완하려 한다.
ㅇ 몸에 배인 다중언어
표의 (表意、뜻 글) 한자, 표음(表音、음의 글) 조선어/한글, 음에 뜻을 모두 갖춘 일본어에, 생활, 사업용어로 영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훈민정음으로 시작된 우리글이 2024 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역사적인 거사에도 흥분 했었다.
조선족으로 태여 났기에 필자의 동년 시절은 조금 무거웠지만 다채로웠다. 또한 조선족이 였기에 여러 고민과 갈등속에서 “하나의 국가나 민족에 제약되지 않고 한정되지 않는 개인 혹은 民에 입각한 평화 가치의 창출을 탐구하는 정치학”이란 학문의 길을 걷게 되였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본 풍경
이번 세션에서는 재일 조선족사회 초기부터 많은 활동을 기획, 조직하고 있는 김광림교수, 천지회 창시자 이동철사장, 재일 조선족 축구협회 회장에 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마홍철회장, 일본 중화총상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심포지엄 개최 당시의 천지회 박문걸회장을 등단자로 모셨다. 아시다시피, 여러 분야의 선구자, 대표들이시다. 파실리테이터를 단순히 진행자가 아니라, 참여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촉진자라고 정리하고, 필자의 직업적인 시각도 주입 하면서 아래의 질문을 시도했다.
개개인이 넘어온 아리랑 고개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우리는 어디로?>의 첫 대목으로, 개개인의 경력에 있어서 아리랑 고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넘어 왔다면 그 고개를 넘어 무엇을 보았고? 아니면 무엇이 보였나? 고 문의했다.
등단자들의 대답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ㄱ 편협한 고향을 떠나 더 좋은 삶을 찾아서 일본에 왔다. 일본을 통해 국제사회를 알고, 넓은 세계에서 국제 시민이 되려 한 게 내가 넘어온 아리랑 고개 였다.
ㄴ 어린시절 고난 했기에 경제적인 부를 찾아 일본에 왔다. 생활에 여유가 생겨 여러 활동을 조직하다가 일본에 고마신사 (사이타마현에 있는 ⾼麗神社. 약 1300 년전 고구려에서 건너온 왕족인 고마노코키시쟛코(高麗王若光)을 주제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있다는 걸 알고 찾아보게 되였다. 우리의 뿌리를 찾은 느낌이 였다.
ㄷ 아리랑 고개에는 원한(怨恨)과 저주가 섞여 있다. 내가 넘어온 고개는 한이 라는 감정의 울타리 였다. 우리는 믿음으로 한(憾)을 초월 해야 한다.
ㄹ 내가 넘어온 하나의 고개는 자라며 받아왔던 교육의 틀과 역사관이 였다. 그 고개를 넘어 서술이 다른 역사인식과 정보, 지식 구조, 지식 체계를 보았다. 신선하고 새로웠다.
등단자들의 대답에서 열거된 아리랑 고개의 의미를 정리하면, 경제적인 가난, 출신지의 편협함과 후진성, 받은 교육으로 형성된 강직(硬直)한 역사관, 지식구조, 그리고 조선반도에 뿌리 내린 원과 저주가 썩인 한이 였다.
우리만의 理/이치에 관하여
다음 질문은 우리의 이치에 관해 펼쳐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부각되는 조선족들의 여러가지 부정적인 표상과는 달리, 중국에서 조선족들은 예절이 밝고, 또한 의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더해서 정도 많고 흥도 넘치는 게 바로 우리다. 재일조선족 사회에서도 가감 없이 표현 된다.
다만, 그 예의에 비해, 의리에 비해, 넘쳐나는 정과 흥에 비해 우리는 이치가 미약하다. 필자의 질문은 우리는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는지? 아니면 우리의 고유성을 입증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했다. 자기를 정당화 하고 자율 할 때, 나가서 타자를 판단 하고 비판 할 때, 더 나아가서 후예들을 교육 할 때, 공자는, 게르만인들은, 일본사람들은, 탈무드에서는,……등등으로 우리는 너무 가볍게 흔하게 타자가 만들어 놓은 이치를 인용해왔었다. 때로는 타자의 기준을 갖고 다른 타자를 평하면서, 스스로가 똑똑한 듯 우월성을 찾으려 했고, 자아안위를 해 온 면도 필자한테 있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이제는 우리의 이치를 찾아 놓고 정리 하자가 필자의 발제였다. 혹시 우리 세대가 이 노력에 게으르면, 후대들의 망설임은 지속될 거고, 그의 들이 자기정당화를 위해 새로운 타자의 이치를 찾아 헤매는 또 다른 방황의 사이클이 시작될까 봐 우려되기 때문이다.
조선족 주체모임 <천지회설립 30 주년 기념심포지엄>에 꼭 프랑스의 고갱의 발제를 원용하지 않고서는 우리 스스로 문제제기를 못했을까?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총괄하면 우리에게 이치가 있나? 그 이치는 뭐냐? 였다.
추상적이고 까다롭지만, 도피하고 포기하면 안 될 과제이다. 일분정도의 침묵을 깬 발언이 "조선족 사회만이 아니고 우리 민족을 넓게 살펴 봐도 리더가 없습니다." 라는 충격적인 답변이 였다.
재일 조선족사회를 전력으로 이끌어 오신, 모두가 입을 모아 우리들의 리더라고 불리우는 등단자의 발언이기에 더 놀라웠다. 허나 조선족 사회 당사자로서, 관찰자로서 필자도 동감이다. 아리랑의 공감대와 공통성을 바탕으로 한 기억과 정에 흥을 공유하는 모임과 그 조직자들은 수두룩하지만, 우리가 나아 가야 할 방향을 입증하고, 제시하고, 이끌어 갈수 있는 리더는 아직 성장하지 않았다. 궁국적으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는 각자의 마음에서 키워야 한다.
이런 리더를 육성하는 첫 걸음이 바로 나만의 이치에, 아니면 진리에 대한 정리이다. 개개인의 자립과 자율이 공동체의 주체성을 구축해 간다.
감정의 고개를 넘어 이성의 지평선으로
감정의 고개를 넘어 개개인의 독립을
개인에 입각한 평화의 가치의 실현을 모색하는 정치학자라는 필자의 정체성을 재 강조하면서 이하는 앞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필자 하나의 가설이다.
19 세기 후반, 20 세기초 선조들이 조선반도를 떠난 이유와는 달리 20 세기말, 21 세기초 우리가 고향을 떠나는 목적은 더 부유하고 발전하고 문명한 곳을 찾아 가는 거였다. 그 흐름을 근대화라고 정리하면서 정으로 얽매인 감정의 고개를 넘어서 이성의 지평선으로 가는 게 또 하나의 아리랑 고개라고 생각한다.
본문에서는 "우리"라는 복수적인 일인칭을 주어로 하지만, 이는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문제이다. 우리는 공동체의 개념인 민족 혹은 국가에 익숙한 반면 개인이라는 의식과 인식은 미흡하다. 아시는 바와 같이 민족과 국가의 독립은 개인의 독립을 전제로 한다.
필자한테 아리랑의 고개를 넘는 첫 걸음은 공동체에 매몰된 개인이 아닌, 자주적인 민족을 형성하는 필수조건인 개개인들의 독립이다. 개인의 독립을 경제적, 인격적, 감정적, 그리고 방법론의 독립 등으로 분별 할 때 경제적인 자립에 대해서는 과다한 서술이 필요 없다. 허나 인격적인 독립에 관하여 살펴보면 아직은 거리가 있다. 효(孝)에 더해 순(順)의 당위성(当為性)까지 요구되는 자녀들, 예(礼)와 의(義)를 넘어 충(忠)까지 요구되는 후배들, 가정과 사회가 집요하는 “현처량모”의 울타리에 벗어나지 못한 여성들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개개인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한 행동원칙의 합리성이 삼강오상(三綱五常)을 사회 질서의 기본규범으로 삼는 유교의 문화의 뿌리에 짙고 응축된 감정을 동반한 孝, 礼, 義등에 타협되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보편적이다.
이성의 지평선에서 真・善・ 美에 대한 방법론을
우리의 이치에 관해서 필자는 방법론의 독립에 대해 제기하고 싶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자각이 결여된 상태에서 타자의 지혜, 타자의 방법론을 원용하여 우리들의 일상을 꾸려왔다. 때로는 타자의 기준을 갖고 다른 타자를 비판하며 자아 만족도 해왔다.
본문에서의 필자의 주장은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 타자의 지혜에 대해 거부가 아니다. 우리가 발전하려면 다른 문화와 지식에 대한 체계적인 흡수와 배움은 필수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기 싶은 점은 타자의 경험/이치에 대한 편의적이며 즉흥적인 차용주의, 아니면 수용에 있어서의 자아의 결여이다. 필자의 전편 문장 <아리랑과 진리의 사이>에서 강조했듯이 조선족은 실천력과 적응력이 남다르게 강하다. 그 결론에 이어 필자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이제는 개개인이 정신적 지향의 주체성을 갖고, 타자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터득하는 동시에 우리의 실천경험에서 정리한 진리, 방법론도 확립하고 체계화 하며 타자와 대화 하자. 그리고 끊임 없는 상대화와 재 검증속에서, 우리의 이치를 구축 하자” 이다. 힘들겠지만 이러한 사색을 다음 세대도 이어 가서, 진실과 위선에 관하여, 선과 악에 관하여,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여 스스로의 기준을 갖춘 자신 있는 후대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하고 싶다.
행복이란? 만인이 접수하는 정답은 없다. 허나 정답이 없는 문제라 해서 외면하지 하지 않고 사고를 견지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이치를 만들어 가는 지름길 이다. 아리랑 고개는 손 잡고 넘어 가는 게 아니다. 개개인이 독립의 주체이고, 아리랑 고개를 넘는 주인공이다. 그 점에서 우리가 넘어야 할 아리랑 고개를 개인의 근대화라도 하겠다. 필자가 말하는 근대화는 정에 엉킨 전통에 대한 부정이나 비판이 아니다. 개개인에 몸 배긴 섬세하고 풍부한 정에 더불어 이성적이고 지속적인 사고를 창도하고 활성화 하여 새로운 실천에 활용해, 나만의, 나아가 우리의 경험치로 체계화 하는 방향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한 한강작가 섬세한 감성과 투철한 분석으로 새로운 에세이 스타일을 만들어 인류의 지혜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우리의 DNA 는?
하나의 가설로 A 세련되고 정서적인 감성(Pathos?), B 몸에 익힌 효, 예, 의리의 윤리성을 이성적으로 융합하여 만든 새롭고 남다른 합리성(Ethos 와 Logos 의 융합체?), C 증명해온 실천력(Action)을 조합하여 조선족의 하나의 경험치로, 하나의 방법론으로 정리할 수 없을까? 이 고유성이 확립되면, 어느 날 “조선족”이라는 명칭이 역사에서 사라지더라도 우리의 DNA 를 이어받은 후세는 더 강하게 살아 남는다고 필자는 믿어 마지 않는다. 나아가 체계화된 우리의 경험이 어느 순간엔 타자가 차용하는 이치로 될 수 있다. 이 자체가 조선족들의 실천이 우리만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한 경험과 교훈이 아닌, 보편적인 진리라는 공공성에 입각한 인류사회의 또 하나의 지혜를 만드는 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선 진, 선, 미에 대한 우리들의 독립적인 방법론부터 모색하자.
그리고 계속해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자……
관련문헌:
・呉茂松「複言語、他者、そして自我」『朝鮮族研究学会誌』第9号、2019年12月。
・呉茂松「『間の創造性』から思索する我々の自我」『朝鮮族研究学会誌』第11号、2021年12月。
・呉茂松「아리랑과 진리의 사이: 共通性에서 公共性으로」『朝鮮族研究学会誌』第14号、2024年12月。
(천지회30주년 심포지엄에 파실리테이터을 맡는 기회를 준 기획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최종수정_20250723



일단사단법인 천지회의 30주년 기념행사를 협회관계자들과 함께 기획했던 자로서 본래의 취지에 대해 곡해를 한 것 같으니 추가설명과 해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건달님께서 이하의 글을 썼습니다.
“ 조선족 주체모임 에 꼭 프랑스의 고갱의 발제를 원용하지 않고서는 우리 스스로 문제제기를 못했을까?”
그에 대해 견해를 드립니다.
저는 우리 종족 내지 민족의 “홍익인간”으로 대표되는 홍익사상이야말로 우주최고의 가치라고 확신하는 자입니다.
고로, 남의 것만 무턱대고 쫓아다니거나 훵하니 바라보는 추종자가 아닙니다.
프랑스의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불후의 명작 의 깊은 철학을 차용한 것은 30주년을 맞이한 천지회의 행사 취지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달님께서 차용한 하기 문장의 Phatos,Ethos,Logos도 약2,400년전에 위대한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가 애용했던 개념이지요.
”하나의 가설로 A 세련되고 정서적인 감성(Pathos?), B 몸에 익힌 효, 예, 의리의 윤리성을 이성적으로 융합하여 만든 새롭고 남다른 합리성(Ethos 와 Logos 의 융합체?), C 증명해온 실천력(Action)을 조합하여 조선족의 하나의 경험치로, 하나의 방법론으로 정리할 수 없을까? “
인간은 약1만년전에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정주생활을 시작한 이후, 뇌의 구조와 총명정도는 거의 정체상태에 처해졌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즉 더 훌륭한 사람도 덜 훌륭한 사람도 그다지 없이 서로의 지적수준은 종이 한장차이에 불과하다고 해석가능하지요.
뉴톤도 본인이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은 자기보다 더 탁월한 위인들의 어깨위에서 본 덕택이다라는 취지의 발언도 솔직히 했지요.
나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탁월한 것이라면 존중하고 활용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건달님께서 쓴 명문의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저희 협회와 30주년기념행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므로 가타부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장하고 있는 “아리랑고개”나 “방법론,해결책”에 대해서는 본인의 주장을 공동체에 있어서의 정의나 역할에 대해 확실히 제시해주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고 느낍니다.
이상입니다.
일번사단법인 천지회
회장 문걸 드림